2006/10/16

리눅서로 생활한지 어언 10년


올해(20006년 10월)로써 리눅스 에 발을 담근지도 어언 10년이 되었다. 처음 리눅스를 접했던게, 슬랙웨어였었고 아마도 1997년인가? 1996년인가 되었던거 같다. 버젼도 잘 기억나지 않지만 책에 부록으로 있는 것을 4Mega램의 486컴퓨터에 설치를 해보았던게 리눅스에 대한 첫 경험이다. 전공도 아니고 컴퓨터의 사용이라고 해봤자 게임으로의 용도가 거의 전부였던 내가 왜 이름도 들어본적이 없는 리눅스를 설치하려고 했었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그렇게 설치는 했지만 4Mega램이라는 시스템의 압박과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결국 설치한지 이틀만에 삭제해 버리고 말았다. 프롬프트에서 ls한번치면 한참을 버벅대다가 파일목록이 떳던거 같다. 게다가 이걸 뭐 어디에 어떻게 사용하라는 건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어서 결국 포기해 버리고 말았다. 만약 인터넷이 있었다면 훨씬 효과적으로 사용했으리라..

본격적으로 리눅서로써 생활을 시작한건 알짜 리눅스 5.3(버전이 정확하지 않다)을 만나면서 부터다. 이게 아마 1998년 쯤이였던거 같다. 이때는 가정형편이 좀 좋아진? 관계로 그럭저럭 쓸만한 컴퓨터를 장만할 수 있었고, x-window 환경을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시 windows maker를 윈도우메니저로 사용했었는데, 큼직큼직한 아이콘과 퉁명스럽지만 뭔가 있어보이는 인터페이스가 마음을 사로잡았던거 같다. 하지만 리눅서로 남게 해준데, 결정적으로 도움을 준건 인터넷, 그 중에서도 IRC의 역할이 가장 컷던거 같다.

Internet Relay Chating 으로 맛을 들이다.

이렇게 해서 리눅스에 맛을 들일까 말까 하면서 폼을 잡던게 대학 2학년때인가? 되었던듯 싶다. 학업에 뜻이 없던 터라 학교에서 짤리지 않을 정도로만 출석을 하던 막장 인생을 살던 나에게 IRC 는 독특한 재미를 줬다. 물론 그전에도 netsgo등의 인터넷 서비스 회사에서 제공하던 온라인 채팅방에서 놀기는 했지만 IRC는 저러한 놀이위주의 채팅방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꽤나 얌전한 언어를 사용했으며, 채널의 주제에 맞는 여러가지 이야기도 나누는 등 온라인 토론채널이라고 불러줄 만한 모습을 보여줬었다. 물론 내가 활동했던 채널이 Linux라서 유독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당시에 그리고 지금도 활동했던 irc 서버는 irc.nuri.net 과 irc.mdworld.com이다. 채널은 물론 linux채널로 많은 도움을 받고 많은 사람을 만났었다. 그중 기억에 남는 아이디는 비니루님과 노가다님이다. 아마 아이디가 독특해서 더욱 기억에 남는거 같다. 지금은 뭐하고 지낼지 궁금하다.

그당시 리눅스 환경

한마디로 나몰라 환경이었다. 변변한 데스크탑 환경도 없었고, 제대로된 브라우저도 없었고, 변변한 사용자 애플리케이션도 없었다. 매일 매일 하는 일이 어떤 쓸만한 윈도우 메니저와 응용 어플이 있는지 찾으러 다니는 거였고, 덕분에 컴파일이니 패키징이니 리눅스 쉘 환경이 어쩌고 하는 기본적인 지식을 익혔던거 같다. 당시에 가장 즐겨 사용했던 윈도우 메니저는 windows maker였다. 지금은 KDE나 GNOME와 같은 워낙에 좋은 윈도우 환경(윈도우 메니저까지를 포함한)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거의 사용하지 않는거 같기는한데, 가볍고 시원한 느낌 때문에 꽤나 오래 사용했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최초의 쓸만한 윈도우 환경이라고 할만한 KDE의 beta 0.4 버젼이 나왔다. 지금에서 보자면 인터페이스도 조악하고, 쓸만한 어플도 부족하고 툭하면 뻗고 했지만 통일된 인터페이스의 제공과 konqueror라는 강력한 파일메니저겸 브라우저로 지금까지 사용하는 윈도우즈 환경이 되었다.

옆의 그림을 보면, 당시 킬러 애플리케이션이였던 xmms와 BitchX irc client가 보인다. 지금 다시 보니 외형상으론 그리 나뻐보이지도 않는 거 같다...

PHP 로 프로그래밍 세계 입문

대학시절 유일한 A+과목이 교양으로 한학기 들었던 전산학개론 이였던거 같다. 역시 교양스포츠로 수강했었던 검도(역시 몇개 안되는 A학점 과목)와 함께 가장 재미있게 들었던 과목이긴 했지만 교양은 교양일 뿐, 할줄 아는 거라고는 hello world 찍는게 전부였다. 그러다가 어떤 계기로(아마 IRC에서 누가 바람을 집어 넣었지 싶다) php를 하게 되었다. 당시 php 버젼이 3.0.2였을 것이다.

PHP는 상당히 재미있었고 재미에 매료되었다. 일단 결과가 브라우저를 통해서 눈에 바로바로 보인다는게 무언가를 배웠다라는 만족감을 줬던거 같다. 그래서 거의 1년간을 PHP에 매달려서 상당히 많은 것을 해보았던거 같다. 흔히 그렇듯이 게시판도 만들어보고 웹메일도 만들어보고, 쇼핑몰도 만들어 보면서 지냈다.

그런데 운이 좋게도? IMF가 터지고, IMF가 터진와중에 경기를 부양해 보겠다고 IT산업육성정책을 실시했고 때마침 불어온 닷컴열풍에 힘입어, 지방대에 학점 3점도 안되는 처지에 그것도 졸업하기도 전에 그리 나쁘지 않은 조건으로 취직이 되어서, 본격적으로 이 바닥에서 구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어찌어찌해서 C프로그래밍에 입문 지금까지 이르르게 되었다.

지금은 PHP는 재미로 C /C++을 주요 무기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개발환경은 물론 Linux이고 바닥이 바닥이다 보니 다른 상용 Unix환경에서도 개발경험을 가지게 되었다.

모든걸 Linux로

전적으로 모든 개발을 Linux로 하다보니, 회사업무가 보통 짜증나는게 아니였다. 이미 윈도우즈는 콘솔게임기계로 전락한 상태에서 불편해서 도저히 쓰지못하겠다 하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는데, 팀에서 공유하는 문서는 ms office 제품군의 포맷을 사용했다. 지금이야 open office가 꽤나 완성되어서 그럭저럭 쓸만하지만 당시에는 보기에도 힘이 겨울 지경이었다. 그래도 리눅스 환경을 고집했던 나는 모든 문서를 plain text나 html형식으로, 좀 형식을 갖추어야 되겠다라고 생각되는 문서는 docbook으로 제출했었고, 이것 때문에 꽤나 핀잔을 들어야 했다.

경영지원팀에도 찍혔는데, 뭐 메일을 보내면 잘 읽지도 않고 - 그냥 text로 보내면 얼마나 좋아.. 왜 ms office로 보내냐고 -, 기껏 힘들게 양식써서 보내주면 text로 변환해서 답장주고, 그나마 양호한 경우가 동료의 윈도우를 통해서 문서를 작성해서 보내주는 정도였다. 처음엔 듀얼부팅도 해보고 vmware도 설치해 보고 했었지만 결국 귀차니즘의 압박으로 포기 했었다. 문서는 읽을 수만 있음 됬지 않냐?가 나의 모토였고, 지금도 그렇다.

대충 데스크탑 작업환경은 이렇다. 가장 중요한 웹브라우징은 konqueror와 firefox, 문서작업은 vi, 문서 포맷은 plain text혹은 docbook - 그나마 요즘은 openoffice가 쓸만해져서 자주 사용한다 -, 이미지 작업은 gimp, 통계자료 처리는 gnuplot, 개발환경을 위해서 gcc/g++, make, perl, python, eclipse , vi , 운영체제와 그리 관련있지는 않지만 이런 저런 관리를 위해서 cvs, wiki등등이다.

현재의 Linux life

Linux에서 되는 것만 하자는게 지금의 컴퓨팅 생활 모토다. 노트북과 회사에서 사용하는 데스크탑에는 오직 리눅스만 설치되어 있고, 집에서는 동생도 컴터를 사용해야 하는 터라 듀얼부팅환경으로 만들어 두었다. 싸이 ? firefox에서 안떠서 안한다. 인터넷 뱅킹도 안한다. 그냥 통장들고 찾아간다. 시티뱅크가 리눅스에서도 인터넷뱅킹가능한 환경을 제공해 준다고 한다. 주 거래은행을 바꿀까 고민중이다. 무슨 공인인증키관련된게 ActiveX환경으로만 제공하는 바람에 인터넷 쇼핑도 포기다. 필요한게 있으면 직접 발품을 판다. 동영상 공유니 하는것도 포기다. 덕분에 야동에서 격리된 건전한 생활을 하고 있다.

윈도우를 쓰는 유일한 경우는 World of Warcraft를 할 때이다.

댓글 2개:

Se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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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a™ :

어쩌다 검색하다 보니 ㅎㅎ
반가워요 윤드림님 글이 2006년때건데 아실려나.. 그이전~~ 아늑한 옛날 Sea™ 활동했던 사람에요^^;